김최김

[최김] 서울 천사의 시 (프롤로그)

(아마도) 2.5D 통합온 쩜오어워드에 나올 것 같은 최김입니다.

연재하다가 책으로 낼게요. 첫 편은 프롤로그니까 짧게...






-





사람들의 생각은 늘 범람했고 대부분이 그에게 아팠다. 하나하나 새기기 고통스러울 때 아가토는 성당의 첨탑에 올라섰다. 검은 코트를 입은 천사에게는 날개가 없었으나 향수처럼 높은 곳을 찾았다. 


어떤 자는 몇날 며칠을 울었고 어떤 자는 울음마저도 귀했다. 아가토의 마음은 그런 자를 위해 있었다. 천사들은 기뻐하고 분노할 수 있었으나 노래를 들을 수 없었고 색을 구분할 수 없었고 사랑을 할 수 없었다. 아가토는 첨탑 위를 가장 좋아했고, 그곳에서 절망의 목소리를 찾으며 구름이 흐르는 모양을 구경했다. 


천사가 가장 먼저 다가가는 자들은 가장 아픈 자들이다, 그러므로 천사의 기도는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시작한다. 아가토는 가장 정성 들인 기도가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기도하는 당사자가 모르게 하는 기도였다. 도착했을 때 여자는 이미 살아날 가망성이 없었고, 아가토는 여자의 피 묻은 이마를 제 어깨에 닿게 했다. 봄, 10시 햇빛, 꽃무늬, 시장의 시원한 물냉면. 단어 하나씩 읊자 여자의 숨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석양을 볼 수 있는 벤치, 어릴 적 집앞 공원, 헤밍웨이, 아몬드, 아버지의 웃음, 어머니의 손. 아가토의 목소리가 멈췄다. 여자가 숨을 온전히 거둘 때까지 천사는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검은 코트를 입은 천사들은 큰 재해가 있을 때마다 깃을 꽁꽁 여미고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천사들은 죽어가는 자들의 관자놀이를 감싸 주었다. 그들이 망자가 되어가는 육신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읊어주면 눈 감을 때만큼은 편안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아가토는 범신을 찾았다. 행여 피가 낭자하는 곳에 우두커니 서 있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색을 구분치 못하는 그에게 그러한 범신의 모습은 그저 검고 흴 뿐이었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날개 없는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보살펴야 할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천사가 어찌 인간을 특별히 여긴단 말인가. 아가토는 첨탑 지붕에 서서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자책했다. 범신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범신의 눈동자 색이 궁금했다.












어린 범신이 처음 세례명을 얻었을 때 아가토는 몇 번이고 그 이름을 입속에 담았다. 베드로, 베드로라니. 아이의 고집 찬 눈매와 웃을 때 예상치 못하게 퍼지는 선연함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여겼다. 범신이 태어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친모가 죽었다. 아들이 아내를 잡아먹었단 생각을 떨치지 못한 친부는 윗목에 누인 아이가 우는 것을 아랫목에 웅크린 채 보고만 있었다. 새빨개진 이마에 아가토가 입을 맞추었다. 내가 당신을 선케 하리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자 친부의 자책하는 마음이 들렸다. 눅눅한 장판을 발바닥으로 비비며 결국 눈물을 손등으로 찍어내는 그에게도, 아가토는 이마를 맞대 주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의 잘못도 아니고요. 천사의 숨이 방에 느리게 들어찼다. 범신의 친부는 자책을 관두고 벽을 타고 스르르 누웠다. 아가토의 시선이 다시 아기를 향했다. 어린 범신은 온기를 찾는 양 포대기 밖으로 손을 빼었다. 아가토의 검지 끝과 범신의 손바닥이 마주치고, 그가 쓰게 웃었다. 당신은 아직 나를 볼 수 있겠네요. 커다란 손바닥이 이마 위를 덮었다가, 비져나온 팔을 넣어 주었다. 곁에 있겠습니다. 


범신이 자라는 것을 보며 아가토는 처음으로 시간을 궁금해했다. 아이가 새로 가진 크레파스에 들떠 그린 그림을 보고 처음으로 색을 궁금해했다. 아이가 본 적 없이 그린 바다와 섬을 그는 오래도록 쓸어 보았다. 감각 없는 손끝은 그래도, 그저 깨끗했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첫 해의 어느날, 집안에서는 큰 싸움이 있었다. 친부는 아이의 꿈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했다. 신부라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길인 줄 알고.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고단할 일을. 왜. 아비는 아들을 말리거나 질책할 수 없었다. 두 부자를 지켜보던 아가토는 눈가를 늘어뜨린 채 서로에 대한 미안함만을 듣고 있었다. 어린 범신의 표정은 그의 어른스러움만큼이나 단단하고 틈이 없었다. 아가토는 그것이 속상했다. 틈이 없고 나약하지 않은 자에게 천사가 끼어들 곳이란 없으니까. 집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는 그를 아가토가 천천히 뒤따랐다. 여름이 시작되었기에 길가에는 유채꽃이 샛노랗게 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토는 검은 코트를 입은 그대로였다. 성큼, 성큼 걷다가 어느 순간 겅중겅중 뛰어서 자전거를 따라잡은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범신의 옆얼굴을 보았다.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졌으니 이제 제 얼굴이 보일 리는 만무했다. 속상한 범신의 마음이 아가토에게로 전해졌다. 어금니를 앙다물고 속도를 내는 녀석의 얼굴에 고집이 만연했다. 아버지가 미우십니까? 들릴 리 없건만 물었다.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얼마나 당신을 걱정하는데. 여전히 들릴 리가 없을 테지만 범신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다친 마음도 얼마간은 추슬렀다. 소년의 이름은 범신이었으나, 아가토는 그를 보면서 무리에 결코 속하지 못할 들개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어린 범신은 그만큼 단단하고 또 거칠었다.




-



이 뒷편은 포스타입에서 연재됩니다. >> http://ashlick.postype.com/


,

최근 댓글

알림

이 블로그는 구글에서 제공한 크롬에 최적화 되어있고, 네이버에서 제공한 나눔글꼴이 적용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