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소린과 애기 스란두일
원작 설정 따위 쌈싸먹는 이 페도가 저는 넘나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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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요정은 맨 처음 산 아래 난쟁이 왕국을 방문한 날을 몇 천 년이 지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본디 요정의 기억이란 지워지지 않고 혼의 일부처럼 남아서 그대로 새기는 것이지만, 유독 몇 개의 기억은 짙고 선명하고 아팠다. 스란두일은 추억이 지닌 칼날을 기꺼이 끌어안았다. 추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달콤함은, 그리움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어린 난쟁이왕손의 작은 손가락마다 반짝이던 우유 냄새를 떠올렸다.
어린 요정이 방문하기에 에레보르는 꽤나 먼 편이었다. 일전에 아비가 구해 준 새끼 엘크를 이제 제법 다룰 줄 알게 된 스란두일은 몸종의 도움 없이도 안장에 오르고 나뭇잎만한 손으로 고삐를 쥐고, 에레보르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 가까워서 철이 달구어진 냄새는 붉은 노을과 어울렸다. 요정왕을 환영하기 위해 스로르는 직접 해지는 앞마당까지 나왔다. 그의 어린 손자도 함께였다. 어린 소린은 누가 시킨 것인 양 자연스레 스란두일에게 다가가 작은 손을 내밀었다.
"나 혼자서도 내릴 수 있소."
제법 당차게 말하고 엘크에서 내리기에 자칫하면 뻗은 손이 면구스러울 수 있었으나 소린의 통통하고 동그란 볼에는 기 죽은 낌새가 전혀 없었다. 스란두일은 내려서 에레보르의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턱을 치켜들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전에 스로르 앞에 다가가 얌전히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왕이 이야기를 하며 에레보르의 입구로 들어가는 동안 소린이 스란두일의 팔꿈치를 잡았다. 살며시 끌어당겨 옷자락이 늘어지니 스란두일은 미간을 설핏 구겼다. 그러나 굳이 난쟁이의 도톰한 손가락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네 발자국이 흙먼지를 몰래 뒤집어쓰며 어른들의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을 몇몇은 알았지만, 굳이 타이르지 않았다.
소린이 작은 손에 힘을 주며 그를 데려 온 곳은 에레보르의 지하, 아늑하고 좁은 입구를 가진 방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가느다란 줄 몇 개에 수십 개 엮인 다이아몬드였다. 스란두일의 동그란 재색 눈이 금방 호기심을 띠었다. 이기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니 보석 엮은 줄은 예쁘게 빛을 산란하며 흔들렸다. 소린이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불을 밝히자 환하게 방 안이 드러났다. 어린 아이 둘이 서기에 딱 맞을 만한 공간에는 보석상자며 장신구들이 자리를 잡고 별무리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소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어린 요정왕자를 돌아보았다. 스란두일의 뽀얀 얼굴은 노란 불빛에 섞여 발그레했다.
"이게 다 그대 것이오?"
소린은 놓칠 새라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세공한 것들이오."
그리고 방 구석에 놓인, 제 허리께까지 오는 조그마한 탁자 서랍에서 티아라를 꺼내 들었다. 티아라는 스란두일의 작고 동그란 머리통에 맞도록 만들어서 어른의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크기였다. 소린이 내밀자 스란두일은 선뜻 받지 못하고 눈만 빛내며 내려다보았다.
"이것도 내가 만든 것이오. 왕자께서 오신다고 해서."
조그만 티아라는 가느다란 은제 틀에다가 가운데를 흰 보석으로 장식해 놓은 모양새였다. 곡선이 부드럽게 흘러서 어린 난쟁이의 솜씨치고는 정교하고 세련되었다. 소린은 티아라를 직접 스란두일에게 씌워 주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손목을 끌고 밖으로, 지상으로 올라왔다. 노을의 끝무렵이 스란두일의 덜 자란 백금발마다 가느다랗게 반짝이며 달라붙어서 티아라에 붙인 보석이 무색했다. 그러나 소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란두일은 손을 더듬어 제 머리에 놓인 티아라를 확인했다. 차마 소린이 씌워준 것을 벗지는 못하고 더듬기만 하다가, 면구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물었다.
"이것을 왜 내게 주는 것이오?"
바람이 흩날려 산의 나뭇잎은 아이처럼 까르르 웃는 소리를 내었다. 소린은 볼 위로 엉키는 스란두일의 긴 머리를 어른스럽게 쓸어넘겨 주고 대답했다.
"앞으로 매년 에레보르를 방문하시면 매년 다른 티아라를 만들어 드리겠소."
"왜?"
어렵다는 표정으로 되묻기에 소린은 다시 대답할 말을 알 수 없어 작은 입을 더듬었다.
"어른들끼리는 그, 선물을 주고 받지 않소? 우리도 곧 어른이니까……."
말을 얼버무리고 있을 때에 스란두일이 먼저 한 걸음만큼의 둘 사이 거리를 반 걸음으로 좁혔다. 소린의 이마에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고맙소. 내 일 년 동안 감사히 간직하리다."
제법 예를 갖추어 말하는 태가 소린이 보기에 사뭇 어른스러웠다. 소린은 제가 만든 티아라를 쓴 그를 보며, 다음 번엔 보석 아닌 꽃이라도 어울릴 것 같다고 여겼다. 기분이 좋아 가슴이 달음박질쳤다.
"하지만 여기서 이리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우리 국왕께서 걱정들하시지 않겠소?"
하고 소린을 끌어당기는 손도 제법 야무졌다. 소린은 작은 발이 꼬이는 것도 상관 않고 스란두일의 옆모습을 내내 바라보며 걸었다. 버릇처럼 내려 깐 눈에 이종족의 묘한 분위기가 아직도 익숙치 않았다.
"스란두일."
"말하시오."
"머무실 때에 내 방에서 같이 주무시지 않으려오?"
소린의 말에 내려 깔았던 눈이 잠깐 마주해주었다. 고민을 담고 떼굴 구른 눈동자가 다시 앞을 향했다. 안달이 나서 소린은 저도 모르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좋은 걸 보여드리겠소."
그제야 도도하게 들렸던 턱의 각도가 살짝 내려갔다.
"내 아버지께 청해 보겠소."
새초롬히 말하느라 스란두일의 발간 볼이 살짝 부풀었다. 제 아버지들이 계실 곳을 찾아 광활한 에레보르의 복도를 거니는 동안 어린 사내아이 둘의 걸음이 어느새 맞추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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