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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26. 13:42

정령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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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린스란 단편

FSS AU 소린스란


전에 썼던 거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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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이스터, 하고 부르면 불만인 듯 미간을 슬쩍 찌푸리는 그 표정이 좋았다. 그래서 부러 더 마이스터라고, 장군이라고, 그렇게 소린을 칭하기도 했다. 소린은 왕의 장난에 하나하나 받아칠 성격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말 성격은 더더욱 되지 않았다. 다만 가까이 다가가 졸음 가득한 이마에 입을 맞춰 주면, 스란두일은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네 품이 좋아, 소린. 끌어안고 부비면 소린은 제게로 졸음이 옮는 기분을 느꼈다. 작은 졸음쯤이야 왕의 모든 것을 아는 유일한 자로서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스란두일이 문득 고개를 들고 물었다. 나, 뭐 해야 하더라? 뇌를 개조한 후 스란두일은 기면증 수준의 졸음을 병처럼 앓았고, 때때로 이렇게 허무맹랑한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스란두일은 자주, 사막에 버려진 것처럼 황망해했다. 나, 지금 어디에 있어야 하지? 이곳은 어디야? 나는, 무엇이었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질문, 황망하게 벌어진 입술에 상처 받는 것은 소린이었다. 그를 만들어낸, 그를 변형시키고 쪼개 버린, 그의 주치의이자 마이스터인 소린이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반은 로봇이 된 스란두일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했다. 소린은 그것이 하나의 과정이라 믿었다, 믿어야만 했다.


MSS-알파는 소린이 평생을 걸쳐 오직 스란두일 하나만을 위해 만든 모터헤드였다. 몸체 전체가 은빛이었고 양 어깨에 달린 보호구며 가느다란 쌍검은 왕의 위용을 드러내기에 충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스란두일은 처음 이 모터헤드를 받았을 때, 소린이 전장에 있는 제 모습을 생각하고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모터헤드가 지닌 검날은 출정할 때마다 닳았고 스란두일은 매번 살아서 돌아왔다. 때로는 팔이, 다리가, 등이 찢기고 피를 흘리며 돌아왔으나 기적적인 회복력으로 나았다. 소린은 그가 긴 잠에 빠져 있는 동안 모터헤드를 정비하고 그가 썼던 검을 갈아 놓았다. 그리고, 모터헤드의 엔진이 온전히 식을 때쯤 스란두일은 다시 출정했다.


머크우드에는 기사가 드물었다. 왕이 직접, 매번 출정하는 이유가 그 탓이었다. 모터헤드끼리의 싸움에서 군사는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싸움을 위한 거대로봇이 전쟁을 대신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몫의 총알받이를 해야 했다. 왕은 죽은 장군들의 군번줄을 하나하나 모았다. 소린은 그것이 그에게 도움 된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스란두일은 죽은 자들에게 집착했다.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고, 벽 한 쪽에 걸어 둔 수북한 군번줄을 멍하니 쳐다보며, 마치 그렇게 고통을 줌으로써 스스로 인간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양. 왕의 고집스런 뒷모습에서 소린은 처음으로 후회했다. 차라리 그에게서 도망쳤더라면, 이깟 사랑을 버리고 그를 배반했더라면. 그를 고치는 것이 망가뜨리는 일임을, 미리 깨달았더라면.







스란두일은 추진 버튼을 힘 줘 눌렀다. 캐리어에서 나오자마자 경계 태세를 갖추고, 검을 뽑았다. 나무 하나 없는 벌판에 절벽이 이어져 아래에서부터 바다 소리가 들렸다. 칼날 위 같은 경계의 상황에서 파도만은 박자를 맞추어 평온하게 이어졌다. 스란두일은 문득 생각했다. 소린은, 자신의 어디까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는 어디까지를 견딜 수 있을까. 인간인 그가, 기사인, 파티마인, 반로봇인 나를. 


기척은 뒤에서 들렸고 스란두일은 방어할 새 없이 등을 얻어맞았다. 적국의 모터헤드가 세 대였다. 후퇴마저 어려웠다. MSS-알파의 팔이 잘려나갔다. 일반 기사였다면 물리적인 충격으로 그칠 터였지만 모터헤드와 직접 연결된 스란두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그는 본국과의 모든 연결을 해제했다. 그리고 MSS-알파와의 일체화를 시도했다. 모터헤드의 심부가 안전하다면 그 또한 살아남을 확률이 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함께 박살날 터였다. 절반이 휴머노이드인 기사, 스란두일만이 가능한 시도였다. 파도 소리가 고요하게 그의 감은 눈속까지 밀려들었다. 









에레보르가 멸망하고 아비도 전쟁에서 죽은 뒤, 소린은 남은 백성들을 위해 왕손으로서의 이름을 버리고 망명을 택했다. 마지막 남은 랩터가 도착한 곳은 아름답고 묘하게 병든 듯한 분위기의 숲이었다. 다행히도, 머크우드의 왕은 소린과 소린의 백성을 받아 주었다. 성년을 막 앞두고 있던 나이의 그는 왕자라는 직위를 버리고 왕의 마이스터가 되었다. 하루만에 나라들이 없어지고 생겨나던, 끝없이 싸움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목숨은 하찮았고 기술은 우대 받았다. 소린은 자신이 가진 기술이 얼마나 값진지 알고 있었다.


내 모터헤드를 만들어 주겠나?


키가 크고 아름다운 왕은 어딘가, 아파 보였다. 역광이 비쳐 가느다란 백금발이 흩날리는 게 가닥가닥 보였다. 소린은 그를 고치고 싶었다. 마른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색대는 다행히도 왕을 찾았다. MSS-알파의 운전석에 고이 앉은 스란두일은 숨이 붙어 있었으나, 박살난 모터헤드와 연결되어 있어 떼어낼 수 없었다. 왕이 돌아왔을 때 소린은 울지도 소리지르지도 않았다. 그가 할 일은 니퍼와 펜치를 들고 망가진 왕을 고치는 것뿐이었다. 스란두일의 위에 올라타서, 길게 내려감긴 속눈썹과 핏기 없는 얼굴을 외면한 채 연결 헬멧을 살폈다. 어금니가 꽈드득, 소리내며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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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린스란 단편

필멸의 여름

린란의 소재 멘트는 '이게 마지막이라면..', 키워드는 침대의 삐걱거림이야.

한산한 느낌으로 연성해 연성

http://kr.shindanmaker.com/360660 





살에 닿자마자 불길처럼 번지는 감각이 있었다. 속에 들어가 뭉근하게 찔러대다 때로 날카롭게 굴면 흐트러짐을 숨기잖고 마주해주던 눈빛, 속에 요정 특유의 선연함이 있었다. 소린은 요정왕이 가진 심연을 알았다. 손을 뻗어도 뻗어도 닿지 않을 곳까지 이어지는 듯한, 그 어둠을 알았다. 제 정인이 어느날 추락해 떨어지지 않을까 어린 마음에 그가 겁 먹은 적도 있었다. 다만 이제는 옛날이었다. 그는 스란두일의 심연이 제 넓고 단단한 품으로도 감쌀 수 없는 것임을 일찍 깨달았다. 필멸의 열기는 다만, 그의 입구에서 크게 불을 질렀다. 불멸자에게 특별한 봄을 주고, 남다른 계절을 주고, 기억에 색을 입혀 주었다. 스란두일은 기꺼이 그에게서 봄을 안아들었다. 작지만 단단한 난쟁이가 훌륭한 수염과 길고 검은 곱슬머리, 저보다 큰 어깨를 가지고 더 이상 제게 절하지 않은 이후로 스란두일은 한껏 더워졌다. 바스라질 것처럼 투명하면서도 견고한 감정을 받아들였다. 늘 한 자리에서 흐르던 그가 소린을 만나 샘솟기 시작한 것이었다. 함부로 만지고 더듬어대는 거친 손바닥이 좋았다. 수염이 쓸려 입가를 트게 만드는 입맞춤이 좋았다. 요정왕은 소린을 가질수록 아이처럼 애달파했다.


전쟁을 앞둔 왕의 몸은 평소와 달리 뜨거웠고, 막사 안에 임시로 놓아둔 침대는 형편없이 삐걱거렸다. 소린은 문득 슬펐다. 허릿짓을 멈춘 채 제 남근이 들어찬 스란두일의 하얗고 매끈한 아랫배를 가만히 쓸어 보았다. 스란두일, 하고 불렀다. 땀 젖은 요정의 얼굴이 잠깐 환해졌다. 빛을 잊지 마시오. 마주하지 않고 한숨처럼 내뱉은 소린의 말에 스란두일은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소린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잊으시오, 하는 말은 접어 두었다. 뱉지 못한 말이 날을 세우고 혀를 씹었다. 소린은 아팠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제 몸뚱이를 상상했다. 스란두일을 두 손으로 짓누른 채, 이내 절정을 맞고 파정감이 겹쳐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그를 붙들고, 침대의 끊임없는 덜걱임을 무시하고, 조금 더 깊이, 더 깊이, 욕심을 부리다가, 마침내 요정왕의 안에서 열락을 맞았다. 전쟁이 끝나면 그에게 직접 만든 티아라와 반지를, 이번에야말로 결코 선물하리라고 마음 먹으며 가슴 위로 쏟아졌다. 가운데에는 그를 닮은 물빛 다이아몬드를 박고, 실마릴과, 백금을 섞어서, 그리고 그의 약지에 맞는 은반지와, 같은 디자인으로 제 손가락에 꼭 맞는 것도. 요정왕의 심장 고동 소리가 귓바퀴에 가득 찼다. 부디, 잊지 마시오. 그대가 빛이니. 아르다의 은총, 숲의 주인, 나의 영원한……. 잠이 쏟아졌다. 요정의 더운 팔이 저를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아침이 되었을 때 스란두일은 빈 품을 느끼고 망연해졌다. 체온의 흔적도 없는 것을 보아, 소린이 난쟁이 막사로 돌아간 게 이른 새벽쯤 아닐까 싶었다. 간밤의 열이 꿈처럼 멀었다. 막사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갈리온이었다. 전하, 난쟁이들이……. 말 끝나기가 무섭게 난쟁이 군대의 출정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렸다. 스란두일은 손바닥으로 침대를 짚었다. 허망하게 삐걱거렸다. 천천히 빈주먹을 쥐었다. 시트가 말려들었다. 야속함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순식간에 파리해진 입술을 갈리온이 걱정스레 보았다. 원군하지 않고 우리는 남쪽을 막는다. 여느때와 다름 없는 왕의 하달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그 무게가 달랐다. 그가 막사를 떠나고 스란두일은 침대 위에서 조그마한 쇳덩어리를 하나 찾았다. 에레보르의 문양이 조악하지 않게 새겨진 작은 고리는 소린의 땋은 옆머리 아래 늘 달려 있던 그것이었다. 어째서 그가, 평소 무엇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제 정인의 성정을 아는 스란두일은 손바닥에 장신구를 두고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품에 넣었다. 앙가슴에서 고이기 시작한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눈을 한 번 길게 감았다 뜨자 잃었던 결의가 돌아왔다. 걸어둔 갑옷을 집었다. 막사를 나가고 말에 오르는 왕의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당신이 내 모든 여름이었다고 말해야 했다. 뒤늦게 가슴 아래 통증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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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린스란 단편

소린스란 FSS AU - 마이스터 소린, 기사이자 왕인 스란두일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AU입니다.


* 모터헤드 : 거대 로봇형 병기. 기존 매카닉과 달리 상당히 미형이며 기사와 파티마가 함께 운전한다.

* 파티마 : 미소녀/미소년 형태의 휴머노이드. 기사가 모터헤드를 운전할 때 모터헤드와 기사를 연결해 주기 위해 함께 탑승한다. 

* 마이스터 : 모터헤드와 파티마를 제작하는 기술자. 








네 손등 만질 때마다 전기가 오르는 것 같아. 스란두일은 졸음에 겨워 나른하게 눈을 깔고 있었다. 수술 후로 쪽잠이 유독 많아진 것 같았다. 소린은 담배를 물고 침대 바깥으로 발을 뺐다. 


파티마의 기능은 스란두일의 몸속에서 끈질기게 싸움을 걸어댔다. 소린이 그의 머릿속 절반을 파티마의 인공지능으로 대체해 버린 후, 하나의 스란두일 안에 공존하는 로봇과 인간의 전쟁은 기면증이나 불안, 우울과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그가 감성적이지 않은 기사이기에 부작용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소린은 그렇게 여겼다. 스란두일의 감정들은 조각나고 뒤틀려 이가 맞지 않는 채로 날을 세워서 소린마저 다쳐야 했다. 상처는 묵묵했으나 시간은 성급했다. 소린은 어떻게든 제 기사를 고치고 싶었다. 스란두일은 왕과 기사, 연인, 환자의 이름을 모두 안은 채 가라앉기 시작했다. 추락은 아니었다. 파티마는, 로봇은, 결코 퇴보할 수도 추락할 수도 없었다. 뇌의 절반을 기계에게 내어준 스란두일은 떨어져내릴 권리마저 잃은 것이었다. 그리고 모터헤드를 파티마 없이 몰 수 있게 되었다. 소린이 만든 모터헤드는 스란두일에게 차라리 안락했다. 그는 뇌의 절반을 개조한 후 처음 모터헤드에 탑승하고 제어장치를 연결했을 때, 심장박동을 크게 늘리며 말했다. 꼭 초신성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이런 기분이군. 드물게 흥분한 왕의 말투였다. 그때 소린은 결심했다. 다시는 당신의 마이스터가 되지 않겠다고. 다시는 모터헤드를 만들지 않겠다고. 


소린은 카펫 위에 떨어진 가운을 주워 입었다. 커피 좀. 웅얼대는 소리에 대답 않으려다 옷자락을 당겨대는 힘없는 손가락에 결국 힘없이 웃으며 돌아섰다. 커피는 안 됩니다. 대신 홍차를 드리죠. 말 끝나자마자 다시 웅얼대는 목소리까지는 분간하지 못했다.


머릿속 절반이 로봇인 기분이 어떤 건지 궁금했어. 그렇게 말하는 왕은 올해로 백스무 살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기사의 혈통 탓에 좀처럼 늙지 않아 여전히도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뇌의 절반은 사람의 것이 아니므로 앞으로는 더욱 더디게 늙어갈 터였다. 소린은 그의 거짓말 같은 백금발을 쓸어 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으나, 스란두일은 입을 다문 채 시선을 멀리 던졌다. 아득하게 깊은 눈이었다. 왕의 등은 넓고 단단했다. 오랜 싸움을 거친 몸이었다. 소린은 차가운 그의 백색 투명한 피부 안에 숨겨진 불을 사랑했다. 머리칼을 걷고 목덜미에 입 맞췄다. 그제야 시선이 제게로 모아졌다. 스란두일은 살며시 웃었다. 악의 없이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당신은, 나를 원망치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나를 괴물로 만들게 하고, 너를, 너와 꼭 닮은 이 모터헤드를 타고 전쟁에 나가야 하는 나를, 국왕으로서의 나를, 수십 번도 더 광장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너를 두고 출정해야 했던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냐고 수십 번도 더 묻고 싶었다. 그러나 스란두일은 묻지 않았다. 다만 소린의 무릎에 볼을 묻을 뿐이었다. 나, 커피 마시면 안 돼? 좀처럼 듣기 힘든 왕의 칭얼거림에 소린은 웃음을 참았다. 곧은 이마뼈에 졸음이 가득했다. 내가 죽으면 이 성단을 떠나서 묻어 줘. 내가 죽으면, 당신도 이 우주를 떠나. 다시는 펜치와 니퍼를 잡지 마. 그 누구의 모터헤드도 만져 주지 마. 분명 입 속으로만 말했으나 모든 것을 털어 놓은 기분이 되었다. 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스란두일은 조금씩 졸음에 빠져들었다. 어둠숲의 마이스터 소린이 왕을 위해 만든 은빛 모터헤드, MSS-알파의 마지막 출정을 앞둔 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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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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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린스란 단편

소린스란 조각가 소린 x CEO 스란두일 단문

소린의 작업실에서는 젖은 흙 냄새가 났다. 오전에 갔다 오면 철 냄새 비슷한 그 향이 하루 내내 스란두일의 코끝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소린이 다른 직업을 택한다 해도 이 비슷한 냄새에 배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섹스 도중에 맡는 소린의 몸냄새는 그보다 좀더 달고 짙었다. 스란두일은 펜을 책상에 놓고 서류 뭉치를 한 쪽으로 밀었다. 소린의 몸냄새를 떠올리자 묘하게 허기가 졌다. 


타코 좋아하십니까? 잘 아는 데가 있어서. 소린은 점심을 같이 하자는 스란두일의 전화에 그리 대답했다. 스란두일은 묘하게 설레서 휴대폰을 반대쪽 귀에 고쳐 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기업 CEO에게 식사요청을 할 때 식당을 예약하고 메뉴를 애써서 골랐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이에 싸서 손으로 먹는 메뉴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수신구로 담뱃불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시간과 장소를 읊조리고, 서로 대조했다. 스란두일은 허기와 흡연욕구를 같이 느끼며 통화를 끝냈다. 짧은 통화였으나 귀가 뜨거웠다. 사무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물고서야 오후에 스케줄이 있는 걸 기억해냈다. 갈리온에게 들을 잔소리가 벌써 성가셨으나 어쩐지 담배 문 입술에 자꾸 미소가 떴다. 지금쯤 소린은 담배를 끄고 다시 작업실에 들어갔으리라. 배가 몹시 고파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허기였다.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고집을, 스란두일은 수도 없이 많이 봐 왔다. 그러나 소린에게서 보이는 단단함은 그런 류와 달랐다. 다부진 체격이나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듯 대강 묶어 다니는 검은 곱슬머리 탓일까, 그것 때문에 내가 이리도, 몸이 다는 것인가 싶었다. 미술관 몇 개를 관리하며 만나 본 예술가들 중에는 더러 몸으로 스란두일을 잡아두던 자들도 있었다. 처음 소린의 작업실 낡은 소파에서 몸 섞을 때만 하더라도 스란두일은, 익히 진행해 왔던 흔한 관계의 평행을 떠올렸다. 엇비슷한 무게, 찍어내려 흩뿌린 먹물처럼 단번에 번졌다가 새로운 캔버스에 닿으면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색을 바꾸는 얼굴들, 변덕들. 뒤엉킬 일이 없는 관계란 그렇게 간편하고 좁았다. 처음 그가 만난 소린은 어린 아이의 손을 모티브로 한 조각이었다. 소린의 깊은 눈과 마주치는 순간 스란두일은 제 편견을 스스로 꾸짖으며 조각에 턱짓했다. 제목의 K가 뭔지 물어 봐도 됩니까? 소린은 더러운 손으로 얼굴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어깨로 볼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막내조카 이름이 킬리요. 스란두일은 아, 하고 짧게 탄성을 내뱉곤 세련되지 못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다른 조각들을 감상하는 내내 소린은 저 멀리 떨어져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델 것처럼 더웠다. 몇 번의 방문이 더 이어졌으나 소린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도,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스란두일은 이후로도 몇 번 상상해 보았다. 행여 소린에게 먼저 정장 자락을 풀어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먼 발치에 앉은 채 저를 지켜보기만 했을지. 


처음 그의 앞에서 정장을 벗은 날, 스란두일이 작업실을 떠날 때 소린은 알몸으로 테이블에 앉아 섹스 전에 미처 다 못 마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는 거울이 없었다. 녹슨 철문을 열기 직전에, 스란두일은 결국 돌아보았다. 어두운 탓에 묘하게 이지러진 소린의 옆모습이 그에게 오래도록 번져 있었다. 






타코는 나쁘지 않았다. 얇은 와이셔츠에 겉옷 없이 나온 스란두일은 살짝 한기를 느꼈다. 소린은 검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가슴이 팽팽하게 벌어져 불편해 보였다. 타코 가게 앞에서 왁자지껄 지나가는 대학생들을 구경하며 둘은 불 하나로 담배를 나눠 폈다. 잠깐 이마가 닿았고, 소린의 짧게 깎은 손톱이, 담배를 쥔 깨끗한 손가락이 스란두일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어서 처음 보는 청바지와, 방금 닦은 듯한 구두까지. 그제야 스란두일은 그의 검은 셔츠가 몇 벌 되지 않는 그의 정장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그는 웃음을 참고 물었다. 당신, 혹시 작업실에서 숙식을 다 때우는 건가? 소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들어가는 날이 많긴 한데, 집은 있습니다. 집은, 이라는 말에 스란두일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버릇처럼 익은 화술도 소용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씹으며 말을 고르는데, 소린이 은근하게 웃었다. 가 보시겠습니까?


소린의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둘은 결국 차 안에서 혀를 섞었다. 갈증이 일어 스란두일은 제 넥타이를 늘어뜨리며 소린을 몰아붙였다. 소린은 그의 흐트러진 옷깃을 틀어쥐고 바짝 당겨 압박해댔다. 장정 둘의 몸짓이 거칠었으나 몇만 달러 짜리 대형 승용차는 쉽게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숨과 숨소리, 혀가 뒤엉키기를 한참, 소린이 열기를 그대로 담은 채 말했다. 당신 손을 조각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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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린스란 단편

소린스란 검투사AU 조각글



근본없는 AU 주의...설정 짜고 쓰고 싶지만 ㅠㅠ 엉엉 설정 짜고 싶어요 흑흑...

그냥 단문입니다... 더 쓸 거 같지가 않아서;;







함성이 들끓었다. 함성은 승자의 잔혹함에 소름 돋는 것을 감추고 싶은 관중들의 발악이었다. 그가 이기고 나서야 스란두일은 제 손발이 온통 굳어 땀에 젖은 것을 깨달았다. 경기장 한가운데 선 소린은 팔을 치켜들지도, 관중들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는 왕을 향하고 있었다. 멀리서 본 소린은 스란두일에게 작은 짐승을 떠올리게 했다. 송곳니와 발톱을 잃고도 끝끝내 사람을 물고 날을 세우고 있는 작은 육식동물이라면 저런 모습일 터였다. 스란두일의 입끝에 만족이 어렸다. 소린은 검을 경기장 한가운데에 내던지고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 모래의 매캐함이 왕의 자리까지 불어왔다. 건조한 시야에 눈을 찌푸리고 있자니 어느새 다가온 소린은 스란두일의 앞에 서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관중 속에 침묵이 돌았다. 소린은 고요 속에서 그의 발에 입 맞추었다. 군더더기 없고 충성스러운 모습이었다. 고개를 들고 감히 왕을 마주했다. 만족하십니까, 하고 묻는 얼굴에는 오히려 이렇다할 감정이 없었다. 스란두일은 그에게서 나는 피냄새보다 그 표정에 더 만족했기에, 숨기지 않고 웃어 주었다. 잘 싸웠구나. 소린은 그가 가진 가장 귀한 짐승이었으나 스란두일은 결코 그를 길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소린이 왕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천천히 눈을 내려깔았다.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으나 그 누구도 왕이 안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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