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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리(리리페)] color of
리처드는 그림을 감상하는 내내, 오른쪽 소매에 달린 황금색 단추를 손톱 끝으로 따각따각 만져대고 있었다. 집중할 때 나오는 버릇임을 리가 알 리 없었다. 그는 리처드의 동작 하나하나마다 주인 좇는 강아지마냥 눈치 보고 있었다. 스스로 눈치 본다는 것을 깨닫자 더 부끄러워졌다. 그는 두 발자국 옆에서 리처드의 새까만 정장 깃을 몰래 훑어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제 그림을 몽땅 판다 해도 저 옷 한 벌을 구하긴 힘들 거란 정도는 알았다. 리는 품이 작아 부러 소매를 걷어 놓은 스웨터를 손목까지 억지로 잡아당겨 내렸다. 손톱 아래 기묘한 회색으로 섞인 물감이 끼어 있는 게 보였다. 손가락을 엉기며 문질렀다. 콧날 선 리처드의 옆모습은 수염 자국이 거뭇하게 나 있어도 그의 수트만큼이나 정갈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범접하기 힘든 스타일이라고 정의해야 할까, 리는 아침에 면도해 놓은 제 턱을 괜히 만져 보았다.
"식사했어요?"
갑작스레 돌아본 리처드는 단번에 가까워진 것 같은 착각을 주어서 리는 화들짝 놀랐다. 겨우 대답했다. 아뇨. 그리고 다급하게 고쳤다. 그러니까, 네. 리처드가 눈으로 제 이마며 입가를 훑는 게 느껴졌다.
"밥 먹으러 갑시다."
하고 리처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자연스레 주름 잡힌 정장 자켓에서 묘한 향수 냄새가 났다. 리는 제 작업실에 깊게 밴 물감 냄새와 그의 향수가 뒤엉키는 것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정면으로 마주한 리처드는, 처음 보는 리처드의 미소는 옆모습보다 훨씬 유하고 달았다. 리는 왠지 모르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리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리처드는 앞머리를 길게 기르고 체구 조그만 소년을 상상했다. 자기보다 훨씬 어린, 치기가 가득하고 어린 태가 묻어나는 아이. 그림을 보고 그 작가를 떠올리는 일은 드물었으나 왠지 색이 과감한 유화는 그런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게 했다. 구도를 잡는 스타일이나 화폭에 과감하게 가로지른 붓짓은 어쩔 수 없이 캔버스 앞의 얼굴을 상상케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는 그의 생각보다 나이 많고 유해 보이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팔자로 눈썹을 휘며 리 페이스라고 해요, 라며 격식 없게 웃어 보이는 그에게 손을 맞잡아 주며 리처드는 그의 갈색 눈에서, 천성인 수줍음을 숨기려 웃는 그 순한 눈에서 안도했다. 리는 맑고 젊었다. 리처드가 상상했던 것보다, 리처드가 기대했던 것보다. 그리고 맞잡은 그의 손은 리처드의 손을 모두 덮을 정도로 크고 따뜻했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습니까?"
질문을 던지면 리는 눈동자를 한 바퀴 천천히 굴리곤 했다. 길고 색 옅은 속눈썹이 동공을 지웠다 다시 보이는 것은 교태가 아니라 습관인 게 분명했다. 리는 포크를 한 손에 든 채 말했다.
"열둘, 열세 살 정도였던 거 같아요. 정말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그린 건요."
"그럼 그림을 판 건 언제부텁니까?"
이번에는 눈동자가 조금 더 오래 굴렀다. 방금 음식을 넣은 입술이 덩치에 맞잖게 오물조물대다가 조심히 열렸다.
"재작년부터요."
리처드는 그가 제 눈치를 보는 것을 눈치챘으나, 접시 위로 시선을 내려 놓았다. 곧 꺼내 놓을 말을 정리하는 동안 눈을 마주치기 부끄러웠다. 썬 고기를 입에 넣고, 오래 공들여 씹어 삼킨 다음에서야 시선을 들었다.
"앞으로 저한테만 파시는 건 어떻습니까?"
리의 포크짓이 멈췄다. 다시 굴러가는 눈동자는 아까와 달리 불안했으나 리처드가 보기에 더 고왔다.
"생각해 볼게요."
작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려는 양 도로 포크를 입에 넣는 리의 손가락을 보며, 리처드는 그 손톱 끝에서 날 물감 냄새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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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가장 고픈 건 리차단이므로 부장님 리처드에 외주디쟈너 에이단 설정을 잡아 보자 왜 에이단은 항상 디자이너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부장님은 가느다란 테의.안경을 썼음 좋겠다. 집에 70년대산 타자기를 보유하고 있을 거 같다. 그 오래된 타자기의 먼지를 걷어내고 한 자 한 자 무언가를 쓰는 리처드가 좋을 거 같다. 편지보다는 그냥 에이단에 대해서 무언가 남기고 싶은데 자기는 일기를 쓰지 않고 메모를 하기는 아쉬운 거다. 그래서 수집해 놓고 쓰진 않던 타자기 앞에 앉는 거. 구식 타자기 앞에서 담배를 물고 더듬더듬 입으로 말해 가면서 느린 해를 등으로 받으며 에이단에 관해서 적는 리처드 ㅠㅠㅠㅠㅠㅠ
리처드는 낡은 것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물이 낡아가는 것을 즐겼다. 그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A사에서 공산품으로 찍어낸, 72년산 민트색 타자기였다. 먼지만 간간이 털어내던 것을 본격적으로 잡고 쓰게 한 것은 에이단이었다. 안경을 고쳐 쓰고 느린 휴일의 오후마다 천천히 한 글자씩 입력했다. 오래된 기계는 소리마저 늘어졌다. 발음을 입속으로 뭉개며 적는 내용은 보통 에이단에게서 발견한 버릇이나 그가 던진 말 따위였다. 그러나 리처드가 정말 적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었다.
리처드는 에이단을 떠올렸다. 멋대로인 것 같은 곱슬머리와, 마디가 곧던 손가락과 서글서글한 눈. 리처드는 입을 다물었다. 말을 잃어 버린 아이처럼 에이단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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