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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린스란 중장편/비가 그친다면

비가 그친다면





맹인 소린 x 몸 파는 스란두일로 소린스란 현대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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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없이 젖을 테지. 당신이 떠나기 전까지 무한하게 자라날 감정에 곰팡이를 피워가며 기다릴 순 없어. 나는 당신을 버림으로써 살아남을 거야. 썩은 뿌리는 구제하지 못해. 나를 뽑지 마, 나를 가져가려 하지 마. 여기는 내 집이야. 그리고 당신은,




비가 오는 날, 스란두일이 씌워주었던 우산은 소린의 머리 위에서 끝없이 빗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거리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비가 곧 그칠 것 같아. 그는 스란두일의 그 말이 거짓이라 생각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도통 가늘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산책을 길게 하고픈 마음에 덧붙이는 말이리라. 소린과 맞닿은 스란두일의 왼쪽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이미 둘의 바깥 어깨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소린은 그가 지을 달뜬 표정을 상상했다. 손 끝으로 읽어냈던 스란두일의 얼굴은 결코 흐리지 않았다. 곧은 눈썹뼈나 고집 센 턱, 소린의 손가락 새를 간질일 정도로 긴 속눈썹. 그 위에 달뜬 표정을 당장이고 손 끝으로 읽고 미소 띤 입술에다 입 맞추고 싶었다. 스란두일은 걷기 힘들어하는 그의 허리를 감싸고 끌어당기느라 소린의 지팡이가 헛걸음 딛는 것도 상관 않는 듯했다. 그는 바쁜 걸음으로 소린을 선물 가게로 이끌었다. 겨울이잖아, 그치? 연말이고 말이야. 그가 가게 문을 열어주며 끌어당길 때에, 소린은 지팡이를 더듬으며 겨울이 어떤 것인지 문득 기억나지 않아 되새겨야 했다. 


한참 선반을 훑던 스란두일이 소린의 손에 쥐어 준 것은 스노우볼이었다. 소린은 매끈하고 차가운 구체를 쓰다듬으며 안에 들었을 것을 상상했다. 예뻐. 정말 예뻐. 아저씨 손이 움직일 때마다 눈이 거꾸로 쏟아져. 소린은 스란두일의 그 말 또한 거짓이라 생각했다. 얼음 아닌 하얀 입자들이 작은 공간에 떠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볼품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는 큰 손 안에 스노우볼을 감싸고 말했다. 이걸로 하지. 너도 같은 걸로. 스란두일의 만족스런 웃음은 보이지 않아도 익히 알 수 있었다.







소린의 재규어에서는 아주 옅은 모과향이 났다. 스란두일은 그 향이 앞좌석에서 운전하는 소린의 기사가 가진 싸구려 취향 탓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기사는 제법 과묵한 편인 것 같았다. 백미러로 스란두일을 훔쳐 보지도 않았으며, 뒷자석에 앉은 그가 소린의 목을 감고 질척하게 입 맞추더라도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린은 그를 찾아올 때 일부러 차를 잘 가지고 오지 않는 듯했다. 스란두일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차창, 새겨진 로고를 손톱으로 긁어 보며 이 차의 뒷자석에 올랐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가져다 팔면 하나 당 적어도 몇백 달러는 벌 것 같은 시계며 반지를 볼 때, 소린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스란두일의 화장대에 올려 놓을 때, 그의 가방을 몰래 뒤지다 점자판으로 된 말라르메의 시집을 발견할 때, 그의 지갑에서 갈색의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예쁜 소녀의 사진을 찾았을 때, 그는 소린을 궁금해 않으려 애썼다. 스란두일은 소린을 뒤에 두고 낡은 수첩에다 종종 일기를 썼다. 그에게선 젖은 종이 상자 같은 냄새가 나, 그게 꼭 장님의 냄새 같아. 우리의 불행은 서로에게 입혀주는 옷과 같아. 나는 그의 불행을 사랑하고 그는 나의 불행을 원하지. 머리가 오른쪽으로 기운 필기체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소린이 뒤에서 안고 어깨에 입 맞추는 게 종종 느껴졌다. 스란두일은 그가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손바닥으로 글자를 가렸다. 돌아 앉아서 소린의 흐리고 뭉개진 두 눈을 마주한 순간, 스란두일은 매번 그의 본래 눈동자 색을 궁금해 하고 상상했으나 차마 입 밖으로 내어 묻지는 못했다. 그는 소린의 본래 눈동자 색을 알게 될까 두려워했다. 두려워하는 것을 감추려 입을 맞추고 몸의 구석구석에다 소린의 손을 이끌 때에 그는 처음 빛을 잃고 망연할 소린을 떠올렸다. 


당신은 어떻게 견뎠어? 어둠으로 내동댕이쳐진 순간, 내 의지가 아닌데도 장막 속에 갇히는 순간, 더럽고 냄새 나는 흙에다 뿌리 내려야 하는 것을, 그렇게 살아남아야 함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얼마나 절망했어? 


스란두일은 이따금 소린의 검은 곱슬을 사납게 움켜쥐었다. 뒤에서 힘주어 잡아당겨도 장님의 두 눈은 당혹감을 보이는 적이 없었다. 불만족스러웠다.







비가 오는 날 스란두일은 오전 늦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전날 아무리 일찍 눈을 붙여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비 오는 날 밤에 스란두일을 찾아간 소린은 다음 날 아침, 오래도록 그의 맨 등을 쓸고만 있어야 했다. 난 비가 싫어. 정말 싫어. 꼭 몸 속까지 푹 젖어서 움직일 때마다 물이 나올 거 같아. 그러나 스란두일의 반지하 방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늘 눅눅하게 습기 차 있었다. 젖은 날에 만지는 그는 꼭 비에 아파하는 꽃을 연상케 했다. 잎마다 젖어서 힘이 빠지고 허리까지 구부정하지만 분명 그 색만은 오히려 더 진할 터였다. 


소린은 잠든 그의 머리칼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스란두일은 제 머리색이 물 빠진 블론드고, 빵 위에 바른 꿀 색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소린은 그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스란두일의 머리칼을 만질 때마다 꿀 바른 빵의 달콤한 향을 떠올렸다. 이곳 골목은 발 닿는 곳마다 온통 썩은내가 진동했으나 스란두일의 체향만은 달게 느껴지는 연유도 그 때문이었다. 소린은 스란두일의 방에서 종종 후각을 잃었다. 달달하게 그에게 취하면 날카로운 그의 후각도 별 도리가 없었다. 별 수 없이 촉각으로 그를 더듬어 찾으면 좁은 방에서 인스턴트 누들 박스나 날카로운 콘돔 포장지를 지나 그의 보드라운 살갗까지 금방 닿을 수 있었다. 여기서 그를 찾는 것은 결코 맹인인 소린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깰 줄 모르는 그의 맨 등에다 입을 맞추고 조용히 속삭였다. 네가 나를 묶는군. 










말이야, 사람 눈을 읽으면 거짓말을 알 수 있다고 하잖아. 스란두일은 길게 담배 연기를 뱉고 말했다. 소린의 어깨에 기댄 머리통이 작게 옴짝거렸다. 소린은 코 끝에 닿는 스란두일의 머리 냄새가 좋아서 고개를 틀고 정수리에 코를 묻었다. 손으로 감싸 안고 살짝이 헝클어뜨렸다. 부드럽고 자극 없는 냄새였다. 장님에게 자극이 없는 냄새란 드묾에도 불구하고. 스란두일은 말을 이었다. 난 그거 거짓말인 거 같아. 아저씨는 매일 나한테 거짓말 하잖아. 무심히 내뱉은 말 끝과 동시에 소린의 입술에는 스란두일이 피던 담배가 물려졌다. 그는 스란두일의 타액으로 이미 축축한 필터를 엄지와 검지로 쥔 채 깊이 빨았다가, 내뱉었다. 다시 한 모금. 그리고 스란두일이 라이터를 켰다 끄길 반복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린은 눈 앞 전경을 상상했다. 몇 개의 전깃줄과 낡은 건물, 비를 피해 간판 아래에 자리 잡았을 몇 마리 비둘기, 비에 젖어 흉하게 얼룩진 시멘트 벽. 스란두일이 매일 보고 있을 전경이었다. 그리고 이 문 앞에서 그는 필시 홀로 담배를 태우며 자신을 기다렸을 터였다. 때로는 새벽이 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른 남자를 찾으려 골목까지 나갔으리라. 둘이 처음 만났던 골목에서, 낙서가 가득한 벽에 몸을 기댄 채, 품이 큰 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있지. 라이터 만지기를 그친 스란두일이 말했다. 고마워. 소린은 앞뒤로 생략된 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손을 뻗어 어깨를 끌어안았다. 코 끝을 묻었던 머리카락에 입술까지 묻었다. 스란두일의 집이 있는 골목 앞, 연말 답지 않게 내리는 비는 미적지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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