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국연

형배범신 교도소에서 만나는

새 신부가 부임되었을 때는 1997년의 한여름이었다. 밖은 한보사태 이후의 연이은 대기업 부도로 매우 시끄러웠고, 한보와 연결되어 있던 연줄 또한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교도소 또한 겨울부터 내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새로 오는 신부는 성질이 더럽단 소식이 있었다. 근데, 그래봤자 신부 새끼 아닙니까, 형님? 빳데리가 형배에게 비죽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수녀는 안오나? 그럼 나두 착실히 성당 나갈 건데. 운동화 속 모래를 털던 일칠칠이 녀석 뒤통수를 갈기며 미친 놈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시끄럽다, 하고 형배가 돌아눕자 녀석들은 서로 어깨를 부대끼고 눈짓하며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벌써 차가 도착하고 있었다. 공을 차던 죄수들이 정문으로 걸어들어오는 신부를 흘끔흘끔 구경했다. 몇몇 놈들이 돌연 괴성을 질렀다. 외부인이 오면 으레 하는 행사였다. 그늘에 홀로 누워 있던 최형배가 상체를 느지막이 일으켰다. 운동장 왼쪽 통로께, 긴 수단자락이 철망 너머로 보였다. 형배가 다시 드러누웠다. 가벼운 갈증이 일었다. 등이 땀으로 축축하고 모래 냄새가 콧속에 그득했다. 한여름에 시커멓게 긴 신부복이라니. 


베드로 김범신은 눈을 내려깐 채 죄수 중 어느 누구에게도 시선을 맞추잖고 걸었다. 키에 비해 성큼성큼 큰 걸음 따라 수단 아랫자락에 모래가 엉겨붙었다. 해가 사나웠다. 범신은 본건물의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멈춰서서 성호를 그었다. 갑작스런 그늘에 눈이 아려 안경을 고쳐썼다. 외딴 곳에 있는 이 교도소는 젊은 베드로에게 마치 거대한 성 같이 느껴졌다. 










죄수들의 땀내는 살이 썩을 때 나는 그것과 비슷했고 욕을 섞으며 떠드는 말들은 사령의 그것과 비슷했다. 범신은 정신부를 떠올리며 비죽이 웃었다. 너, 거기 가서 괜한 성질 부리지 말어라. 사나움에 물들지 말어. 정신부의 타박을 웃어넘겼다만, 이 정도여서야. 교탁 앞에 선 범신은 성서를 내려놓고 죄수들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조용할 것 같지 않은 그들에게 간수가 빽 소리를 질렀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범신은 강단을 내려왔다. 맨 앞줄의 죄수들을 하나씩 눈여겨 보며 훑듯이 느리게, 맨 좌측의 좌석부터 우측까지 걸었다. 범신이 앞에 오자 몇몇 죄수들은 망측한 손짓까지 해보였다. 맨 우측 좌석까지 훑은 범신은 다시 강단으로 올라섰다. 교탁 위 성서를 집어들곤 교탁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와장창, 나무 부서지는 소리에 몇몇은 놀랐고 몇몇은 환호성을 질렀다. 


뭐가 재밌냐, 씨발새끼들아? 


범신의 첫마디에 좌석 사이사이 질려 하는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그리고 다시 좌석을 쳐다보았다가, 손에 든 성서를 펼쳐들고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었다. 짧은 한숨, 그리고 능청스럽게도 깨끗해진 얼굴의 범신이 앞을 바라보았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새하얀 얼굴이 재밌어서 형배는 비죽이 웃었다. 











상담 안 받습니다. 


눈도 안 맞추고 말하기에 조금 울화통이 일었다. 형배는 바지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범신의 걸음을 따라 강당을 나섰다. 두어 걸음을 둔 채 복도를 함께 걸었다. 창문 너머로 해가 들어와 범신의 발꿈치마다 뽀얗게 이는 먼지들이 보였다. 그의 검은 수단은 흠집 하나 없다 싶게 말끔했다. 신부님, 부르자 예, 대답은 하길래 또 속으로만 비죽이 웃었다. 말없이 따라 걷기만 하는데 갑자기 범신이 멈춰서선 뒤를 돌아보았다. 형배가 함께 멈췄다. 그제야 형배는 범신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뭡니까? 묻는 갈색 눈에 독기가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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