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찰스] 네가 필요해
매그니토는 홀로 남았다. 뮤턴트들이 각자의 의지를 가지고 흩어진 후였다. 매그니토는, 에릭은, 어둠 찬 지하 방에 누워 이따금 수용소를 떠올렸다. 제 배 위로 기어다니던 쥐의 두 눈이나 곰팡이 냄새, 겹친 살이 썩는 냄새, 배설물 냄새. 그러나 제 어머니까지 생각이 이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찰스를 떠올렸다. 손 끝에 감기던 곱슬머리의 감촉이나 고집 세게 다문 입매라든가. 그가 마지막으로 무어라 했던가, 에릭, 에릭, 나는 네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아니다. 에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 아니었다. 멋대로 엉키고 원하는대로 모양을 바꾸는 기억에 화가 나 누운 소파에서 뒤척였다. 낡은 소리가 났으나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눈을 굴리며 한참 고민하던 그가 잠에 빠져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천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언뜻 들은 듯도 했다. 듣고 싶은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지하에 만들어 놓은 열 평 남짓 크기의 거처는 지내기 힘들지 않았다.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가지고 있다면. 침대 대신 큰 소파와 이불로도 충분했다. 티비를 가져오고 라디오를 가져왔다. 내내 틀어 놓고 지내면 사람의 소리도 기계의 소리도 아닌 것이 뒤섞여 지하는 왕왕 울렸다. 그러나 단지 소리일 뿐이었다. 무엇도 채우지 못했다. 곳곳에 알 수 없는 얼룩이 남은 벽은 항상 비어 있었다. 샤워를 하다 보면 이따금 물이 끊겼다. 그는 수도꼭지가 다시 제 기능을 하길 기다리는 동안 깨진 타일 사이 구석에 파고 들어 무릎을 세운 채 조용히 쪼그려 있었다. 여름이 가까웠으나 지하는 추웠다. 에릭은 추위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리고 붉게 녹슨 철제 선반을 일그러뜨리지 않고 용서하기로 했다. 지하에서 위로 통하는 작은 창문 밖으로 뭘 모르고 놀러 온 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 있었다. 날이 맑다는 뜻이었다. 그런 날에 그는 티비와 라디오를 끄고 낮부터 자주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이불 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에릭은 근처의 빵 가게에서 파는 크루아상을 좋아했다. 첫 입을 베어물 때 바사삭하고 부서져 입안으로 떨어지는 페스트리의 감촉을 특히 좋아했다. 매그니토를 알아보지 못한 빵 가게 아가씨가 이따금 몇 개를 더 얹어 주면 에릭은 남는 것을 거처 창문 밖에다 놓아 두었다. 간혹 위를 맴돌던 고양이나 들개를 위한 것이었다. 동물들은 에릭이 놓아 둔 음식을 먹었으나 지상에서 머물 뿐 결코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적막이 다시 밀려들었다. 열 평 짜리의 적막 속으로 발을 내딛은 에릭은 잠깐 멈춰 섰다. 어둠에 잠긴 몇 개 가구들을 바라보다가, 결국 크루아상이 가득 든 봉투를 놓쳤다.
네가 필요해.
나는 네가 필요해, 찰스.
얼룩진 시멘트 바닥에 뒹구는 크루아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만 말해 줘, 찰스.
에릭의 목울대가 몇 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작게 난 창문은 딱 그만큼의 네모난 빛을 바닥에 만들고 있었다. 녹슨 철제 선반 위에 그의 헬멧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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