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스란 단편

[톨킨전력60분] 소린의 부활



톨킨전력60분 - 되살리고 싶은 캐릭터
부활한 소린과 스란두일의 만남입니다.

(소린스란소린 성향 주의)













불이 타오른 시간에 비해 잔해가 사라지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바스러진 것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생존자들의 발 아래는 종을 가리지 않고 척박했다. 강물이 검게 변하고 냄새는 어디를 가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하늘이 눈송이를 굵게 떨구며 울었다. 떨어진 눈은 시체를 덮었다. 남은 자들은 시체가 얼지 않도록 내내 눈을 치우고 또 치웠다. 피와 죽은 자들의 잔해와 눈부시게 흰 눈이 분간 없이 뒤엉켰다. 추위가 밀려왔다. 성큼성큼한 큰 걸음이었다. 아프고 긴 겨울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봄이 돌아와도 다시는 가지를 뻗어 자라지 못할 나무와, 빛을 담아내지 못하고 바스라진 구름은 묘한 회색으로 어울렸다. 하늘은 여태 매캐했다. 불과 무기의 흔적이, 자욱하게 낀 죽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서 불멸자도 필멸자도 달밤마다 몸서리를 쳤다. 계절은 아주 느리게 바뀌고 있었다. 얇은 자락을 천천히 끌어오듯이, 남은 자들을 생각 않고 변해갔다. 슬픈 곡조가 이따금 들렸다. 따라 부르는 자는 없었다.

소린은 남아 있지 않았다. 두린의 직계는 절멸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 세기 귀찮은 정도만큼 계절이 흘러갔다.

스란두일은 다시 돌아온 봄에 그의 무덤을 찾으며 꽃도 무엇도 준비하지 않았더랬다. 맨 처음 숲에서 길 잃은 것을 만났을 때부터 난쟁이의 몸은 몹시도 작았으나 그가 스란두일에게 남긴 것만은 작다 할 수 없었다. 그는 소린이 죽은 날 방패를 돌려주고 이후 무엇도 건네지 않았다. 빈 손으로 기린 뒤 돌아가는 길에는 엘크의 발굽에 유독 꽃잎이 밟혔다. 추위를 이기고 끝내 흐드러지게 고집을 피우다가 지는 꽃이 스란두일의 품까지 엉겨들기도 했다. 버릇없으나 색만은 선명했다. 바람에 기꺼이 날려 주며 어두운 숲으로 들어갔다.

몇 밤이 지났는지 헤기 힘들었다. 그는 날을 세는 대신 별을 세었다.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은 유약한 인간만이 지니는 버릇이 아니었다. 그 날도 요정왕은 하루치만큼 더 깊어진 어둠을 보고 있었으며, 그 속을 산책하며 다시 돌아가지 못할 어딘가를 떠올렸다. 달빛이 흐렸으나 제 숲을 거니는 데에 곤란하지는 않았다. 발걸음을 옮기니 소리없이 나무들이 길을 내주었다. 한참 걷던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음산하던 숲에 어울리지 않는 온기가 돌았다. 늘 같던 밤 숲에 돌연 일어난 변화는 왕을 멈추게 하고, 떨게 하고, 달리게 하고, 이윽고 무너지게 했다. 넘어진 무릎에 차가운 흙물이 젖어들었다. 방금 나타난 그림자는 어느새 익숙한 모습을 갖추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손까지 내밀고 있었으나 차마 맞잡지 못했다.

"소린."

한참 달뜨게 숨을 고르다 결국 내뱉은 이름은 주위를 맴돌던 바람 소리를 멈추게 했다. 돌연한 만남을 배려하는 듯이 추위마저 고요히 삭아들었다.

"스란두일."

맞잡지 못하고 허공에 뻗기만 한 크고 흰 손을 소린이 맞잡았다, 곧고 단단하게. 스란두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명하던 왕의 머릿속은 갈피를 놓고 뒤엉켰다. 그럴 리 없다, 당신은 환영이다,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내게 주는 벌인가. 그러나 온기만은 속일 수 없었다. 따스하게 올라오는 체온은 요정의 것보다 높았다. 스란두일은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손에 살며시 힘을 주었다. 전쟁터를 이끌던 왕이 고작 손을 맞잡기까지 큰 용기를 억지로 끌어내야 했다. 투박하고 두꺼운 난쟁이의 손은, 감촉은, 왕의 몸을 기억으로 일깨웠다. 한 순간도 놓친 적 없었다. 어둠 속에서 보면 갓 캐낸 푸른 보석 같이 더운 눈동자와, 쿠즈둘의 억양이 어렴풋이 남은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던 얇은 입매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광경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야 왕은 아주 느리게 웃음 지었다.

"오셨는가, 산 아래의 왕자여."

넘어져 망가진 무릎을 일으켜 세워 준 소린은 그의 손을 놓고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스라인의 아들 소린이, 어둠숲의 요정왕을 뵙습니다."

둘 사이에 반 걸음만큼 간격이 있었고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몇 초의 정적 동안 서로 다른 눈높이가 말도 흔들림도 없이 그저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란두일이 다시 무너졌다. 안기듯 키를 낮추고 어깨를 끌어 안았다. 왕의 옷자락이 멋대로 더러워졌다. 소린이 그의 어깨 위에 마주 손 올렸다. 스란두일에게 묵직한 감촉이었다.

여전히 겨울이었다. 그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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