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과 스란두일 연애편지 단문
에레보르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소. 왕께서도 아시다시피 난쟁이들은 비를 싫어한다오. 귀한 쇠붙이는 녹슬고 장작은 마르지 않으니 말이오. 숲에 있는 내내 그대가 대접을 잘 해주신 탓에 나는 돌아오고 나서도 내내 건강하다 말하고 싶사오나 그렇지 못함에 용서하시오. 숲까지 단번에 갈 수도 있게 걸쳐진 내 상념은 필시 건강하고 당당한데 그대를 그리는 것만은 내 마음이 담아내지 못하고 이따금 빗물처럼 흘러넘친다오. 귀한 자를 반려로 둔 것은 내가 져야 할 업이 아니겠소. 이는 기쁘고 단 홍수라오.
다음 번은 그대가 에레보르로 오시겠군. 불편함 없이 준비해 놓을 것이오. 이전에 머물던 때는 어떠했소? 귀한 요정의 몸이 이곳에 자주 머물러 해가 끼칠까 걱정이오. 내 별빛이자 어둠인 스란두일, 내 또다른 왕이시여, 그대가 머물다 가신 이곳의 철 내음을 읽어주고 싶소. 이곳에 어떻게 그대가 녹아 있는지 알려주고 싶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흔적이 묻은 것은 말로도 눈으로도 서술할 수 없다오. 나의 말이 과하다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하오. 이곳에 남은, 나 아닌 둘의 흔적으로 지내고 있소. 우리 둘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추억들을 가두어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해 보았다오. 그러나 이리 적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군. 어린 시절 숲에서 마주쳤던 요정만은 기억할 수 있으니 족하오.
밤산책을 갈 예정이니 오늘 달은 다른 곳에서 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소.
- 스라인의 아들, 소린
스란두일은 편지를 탁자에 내려놓고 바람에 흩날려 온 꽃잎을 입에 물었다. 단 향이 두 입술 사이 진하게 맴돌았다. 눈동자만 내려 글자를 바라보았다. 소린의 필체는 간결하고도 고급스러웠다. 과연 제 연인의 몫을 다해 보이는 정갈한 언어도 마음에 들었다. 꽃을 문 입술이 만족을 담고 슬며시 웃었다.
매는 주인을 닮아서 급하고 정확하고 겁이 없었다. 처음 오는 에레보르에서 무던히 편지를 전해 주고 다시 날아가는 모습이 사라지기도 전에 소린은 편지를 풀었다. 붉고 가느다란 실은 소린에게 제 반려의 옷깃을 떠올리게 했다.
편지를 펴자마자 곧고 낮은 내 난쟁이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싶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얼굴이며 살결 하나까지는 생생한데도 글자가 소리로 들리지는 않으니 통탄할 노릇이군.
어제는 새로운 포도주가 들어왔소. 제법 향 좋은 것들이라 여름이 오면 과일과 함께 들 수 있을 것 같더군. 당신이 곁에서 내 잔을 채워주길 바라. 갈리온을 물리고 홀로 후원에 나와 답장을 쓰고 있소. 명줄 긴 벌레들은 막 핀 꽃의 단내를 맡고 몰려드는데 벚꽃은 성정이 급해 벌써 열매를 맺으려 하지. 꼭 난쟁이의 고집처럼 초록 열매가 꽃나무 사이에 버티고 단단히 자라고 있다오. 그리고 단단해지는 것은 버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군. 요정은 잊는 법이 없다는 것도 말이오. 불멸자란 육질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오. 당신이 채우지 못할 먼 훗날에 내가 무엇을 기억할 거라 생각하시는가? 나는 남아서 지키고 있을 거요.
그래, 스라인의 왕국은 무사한지 모르겠군. 행여 내 난쟁이까지 비에 쓸려가지 않을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겠지. 내 농에 너무 자존심 상하지 마시오. 화가 나셨으면 다시 만나는 날에 나에게 갚으면 될 터. 푸르게 타오르는 당신이 보고 싶군. 기분이 풀릴 말을 해 드리자면, 일전에 내게 하신 청을 받아들이겠소. 하고프신대로 내 머리 손질을 해보시오.
소린, 나에게 무언가 남기려 애쓰지 않아도 되오. 나는 지금 행복하니.
- 당신의 반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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