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최김

김최 단문 여러 가지 백업


나의 부끄러움은 당신의 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뭉툭한 손등 위에다 이미 성모께 헌정한 입술을 올리고파 당신의 묵주반지를 오래 내려다보았습니다. 쓰다듬어주셨던 살갗마다 열이 오르고 어지러워서 병인가 싶었습니다. 세례명을 불러주시는 당신의 무게가 좋아서 그 아래 짓눌리고 싶었습니다. 어쩐지 함께 맞는 봄은 느리고 느려 꽃마저 드물었잖습니까, 기억하십니까, 베드로,  처음 제가 당신께 고해했던 날의 달밤은 꽃그림자가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눈두덩을 꾹꾹 누르며 봄을 참던 저는 당신이 차라리 돌아서시길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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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제의 앵스트 연성 소재는 작성되지 않은 삶, 약기운, 손을 뻗었으나 닿을 수 없다. 입니다.

깨자마자 노곤한 담배냄새를 맡았다. 준호는 겨우 뒤척였다. 움직임 하나마다 기침이 크게 터져 온몸이 들썩였다. 이불 닿는 것만도 손끝이 아렸다. 김신부의 검은 등이 보였다. 벗어놓은 그의 안경이 협탁 위에서 누런 햇빛을 반사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겨우 짜낸 목소리마저 갈라져 있었다. 돌아앉은 김신부의 손이 그의 이마에 닿았다. 바깥 냉기가 남아 서늘한 무게감이 좋아서 준호는 다시 눈 감았다. 이탈리아에 좀 갔다와야겠다. 김신부의 손에서 나는 옅은 담배내에 안도하며 또 까무룩 잠들려던 때, 느지막한 목소리가 그를 도로 깨웠다. 혼자 가십니까? 김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빛을 절반 받은 스승의 얼굴이 약기운에 자꾸 흐렸다. 언제 오시냐 묻고팠다. 물음이 잔기침처럼 간지러웠다. 더 자라, 하는 말에 준호는 눈을 감았다.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 당신의 무게가 얼마나 위안되는지 적어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백지로 남은 상처는 차라리 찢어내지도 못한다. 침대 한켠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준호는 눈 감은 채 그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바로 앞에 두고 상상하는 일이 버릇되어 먹먹했다. 적어 두었어야 했을까, 어떻게든 새겼어야 했을까. 방문이 열리고, 다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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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고 부제는 앓아누웠다. 빨갛게 달떠서 열 오른 숨만 몰아쉬는 그의 곁을 김신부가 지켰다. 독을 죄 품기엔 아직 어린 범이었다. 불을 끈 채 침대 옆에 앉아 있던 김신부는 준호의 사제복 소매 아래 새겨진 상흔을 보았다. 번개 모양으로 뻗은 자국이, 어제의 구마 중 입은 게 분명했다. 사령이 소멸하면 독기도 사라져야 했을 것을, 예민한 녀석이라 앓아누우며 흉까지 얻은 듯 싶었다. 상흔을 확인하려 김신부는 준호의 상체를 벗겼다. 가슴과 등짝에 가지 혹은 번개 같이 잘게 뻗은 악의 맹독이 한눈에도 끔찍했다. 묵주를 꺼내 들어 입 맞추고, 기도문을 읊었다. 성유에 적신 검지로 상흔 위를 꼼꼼히 훑었다. 준호는 그의 손이 살에 닿을 때마다 낮게 끙끙거렸다. 김신부는 기도문 사이사이마다 자책했다. 온몸이 번들번들해진 준호를 내려다보며 결국 한숨 지었다. 미안하다. 널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선 안 되었는데. 성유 닿은 곳마다 상흔은 더 붉게 일어나서 꼭 준호의 몸에 붉은 뿌리가 내린 것 같이 보였다. 구긴 미간을 보니 김신부의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는 한때 도망쳤다 돌아온 녀석의 흙 묻은 양말을 떠올렸다. 다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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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스승의 닳은 뒤꿈치 뒤를 따르다 보면 불쑥 멈춰서거나 문득 빨라지는 걸음에 익숙해져야 했다. 범신은 그렇듯 열여덟의 준호가 종잡기 힘든 어른이었다. 준호는 멈춰 선 범신의 발이 제게 향하는 것을 보았다. 운동장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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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앵초는 말릴수록 색이 검붉어져 과부를 떠올리게 했다. 준호는 그것이 불경스럽다고 여겼다. 베드로의 꽃이라 했다. 김신부는 먹지도 못하는 걸 주느냐고 핀잔 주고서도 영신에게 꽃 말리는 법을 물어 벽에다 걸어 두었다. 붉은 꽃 옆으로 문이 열리고 김신부가 목발을 짚고 들어왔다. 준호는 이 병실이 싫었다. 아그네스는 김신부가 재활을 거부한다며 그에게 도움 청했으나 제 말이라고 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준호는 괜시리 그녀에게 화냈었다. 뭘 멀뚱히 섰냐. 담배 사왔어? 김신부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뻣뻣한 다리를 두어 번 주먹으로 두들겼다. 다시 감각 없을 거란 김신부의 오른다리는 몇달 새 티가 나게 가늘어졌다. 준호는 피로한 눈두덩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겹겹이 쌓인 짜증과 피로가 시야를 뿌옇게 만들고 있었다. 담배 피고 싶으심 나가서 직접 사 오시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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