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국연

[형배범신 수인AU] 흑호



앗쉬... 오그라듬 주의요...수인 주의...수인인데...유치함..오그라듬.....





*





흑호黑虎는 밤의 기운을 타고 도약하며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숲이 이지러지고 안개가 날렸기에

작은 포유류들은 밤이 오기 전에 굴로 기어들어갔다.





산에 불이 났다. 늦가을 쌓인 낙엽에 자연불이 붙는 일이야 한번씩 있다 해도 때가 한여름이었으니 인간이 놓은 불이 분명했다. 형배는 짐승의 태態로 넓바위에 올랐다. 치솟는 불을 보며 이를 드러낸 채 짧게 포효한 뒤 꼬리를 바짝 세워 기슭로 달렸다.


범신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산도 잃고 너와 나는 잡혀 팔려가 험한 꼴을 당할 거란 이야기에도 묵묵히 묵주알을 닦고 있었다. 그는 산으로 와서 신을 받고도 신부의 버릇 몇 가지를 버리지 못했다. 잘 때가 아니면 꼭 사제복을 입는 것과, 이제 기도할 일이 없는데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묵주를 깨끗하게 닦아 놓는 이런 고집스럽고 소소한 동작뿐 아니라 사람을 믿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형배는 그가 자신과 떠나길 바랐다. 처음 신을 받을 때 분명 범신이 제 손을 잡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두 몸을 온전히 누일 곳을 찾으러 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범신은 피정하는 것처럼 가라앉았다. 정말 산의 일부라도 된 양, 사람 사는 곳과 고작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여기에 머물려 했다. 형배는 그의 고집이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았다. 나고 자라서 자신을 만났던 도시를 버리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쓸 데 없는 고집이었다. 이곳은 병들어 망가질 것이었다. 형배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는 범신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여겼다. 


니, 내캉 같이 살자 안 했드나.


20년도 더 전, 김범신이 아직 신부가 아니던 시절, 처음 몸 섞으며 범신은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내가, 신부 지겨워지면, 물론 그럴 일은 내가 뒈지기 전엔 없겠지만, 그 때 되면 데리고 살든가. 아무리 몸을 섞고 밀어를 주고받고 생사를 넘기는 꼴을 보았어도 범신은 결코 자신의 것이 된 적 없었다. 범신은 쥐고 흔들수록 멀어졌다. 응당 법칙이 그래야만 한다는 듯. 


내 말 안 들리나.


김범신. 이름 끝에 맹수 특유의 위협음이 섞였다. 형배가 범신의 팔을 사납게 끌어당겼다. 말없이 묵주를 쥐고 있던 범신이 팔을 뿌리치고 대번 송곳니를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형배가 먼저였다. 낮게 폣속 긁는 소리를 낸 그가 범신을 짓눌렀다. 앞니로 목덜미를 물고 발톱만 짐승의 그것인 손으로 검은 하의를 찢고 자세를 고쳐 올라탔다. 흉하게 찢어져 옆에 널브러진 사제복은, 범신이 늘 그랬듯이 또 어딘가에서 새것으로 구해 올 것이었다. 그의 아래서 범신이 긴 울음을 냈다. 고양이과들이 위협할 때 으레 내는 소리였다. 형배는 하체를 바싹 붙인 채 그 소리마저 먹으려 다른 손으로 범신의 머리를 짓눌렀다. 하체가 겹치고 형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작이 느렸기에 되려 위압적이었다.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범신은 한쪽 손을 바닥에 긁어 버텼다. 비슷한 시기에 현신한 흑호라 해도 형배의 덩치가 한참 더 컸으며 이는 사람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덩치로 짓눌려 이길 수 없음을 알았던 범신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릉, 그릉 하고 긁는 듯이 울었다. 삽입의 전희가 거의 없이 이뤄지는 교합은 간간이 피마저 보였다. 형배는 그를 사납게 대함으로써 위로 받았다. 범신은 결코 그를 위로하는 법이 없었고, 형배는 앞으로도 그가 결코 자신을 위로할 리 없다 믿었기에 이렇게 사나움으로 보상 받는 것이었다. 비록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해도.


두 마리 범의 교합은 반드시 누군가 하나를 다치게 했다. 실상 그 주가 형배고 타가 범신이 되는 구색이었으나 막상 엎치고 뒤친 뒤에 짐승의 모습을 띠고 서로를 핥아줄 때에는 상처의 갯수나 깊이가 비슷했다. 서로의 피와 털을 혓바닥에 엉기며 어느 날은 밤이 한 번 깊었다가 사라질 때까지 서로의 몸을 핥는 일에만 전념하기도 했다. 범신은 여전히 말이 적었고 형배는 여전히 무심했다. 두 흑호는 서로의 말이나 몸짓보다 당장 닿는 혓바닥을 믿기로 결심한 것처럼, 혹은 서로의 자식이 되어 주기로 한 것처럼 그렇게 오래 공들여 쓸어주었다.






아침이 되고 범신은 형배가 사라진 걸 깨달았다. 온기 남은 자리를 가만히 쓸어보던 그는 굴 밖을 나섰다. 형배의 기척은 어디도 보이질 않았다. 산불의 여파로 새까맣게 그을린 숲은 이곳에서도 보일 만큼 그 지역이 넓었다. 범신은 다시 굴로 들어갔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에 묵주를 쥐었다. 기도문은 단 한번도 잊은 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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