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최전력60분] 첫눈
포로로 떨어지다가 다시 위로 흩날리고, 내려올 듯하다가도 또 도망가는 눈송이들 모양새를 보니 한참은 더 바람이 불 것 같았다. 멀리서 온 버스들은 천정에 하얗게 이미 눈을 쌓아 놓고 있었다. 준호는 머그잔에 코를 박고 커피 냄새를 맡았다. 사제관에 늘 틀어박혀 있다 이렇게 가끔 나오는 일이 달고 따뜻하고 고와서 한없이 재밌었다. 김신부는 신난 준호에게 눈 맞은 강아지 같다 했다. 하다 못해 개를 비교하십니까. 뾰로통하게 맞받아쳐도 기분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눈은 거센 바람을 타고도 용케 나렸다. 준호는 눈을 감고 흩어진 눈송이들이 쌓일 곳을 상상했다. 잃어버린 우산이 모인 지하철 칸, 펜뚜껑들이 모인 학교 마룻바닥 아래, 쌓이지 못하고 흩날리고 또 날리다가 모인 눈송이들의 섬.
- 너는 참, 나이도 안 든다.
김신부의 말이 영 갑작스러워서 준호는 마주보고 앉은 그를 동그마니 쳐다보았다. 스승의 말을 해석하느라 고개까지 기울였다.
- 신부님, 신부님 저 보신 지 아직 1년도 안 되었습니다.
김신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나도 안다, 이 녀석아. 어려 보인단 말이다.
- 예에.
부러 말을 끌며 끄덕였다. 뒤로 말끔하게 빗어넘긴 김신부의 머리칼에 카페의 주홍 불빛이 반들반들 비쳤다. 영신의 구마가 끝나고 김신부는 다시 머리를 빗었고 안경을 새로 맞췄으며 사제복을 다렸다. 준호가 말끔해진 그의 모습에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김신부와 함께 밖에 나올 때 그는 마음이 뿌듯해졌다. 하루는 학교 동기가 있는 성당엘 김신부와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저희 신부님입니다, 하는 말이 뱉어 놓고도 간지러웠다. 일을 보고 돌아나오는 길에도 자꾸 입에 감돌았다. 저희 신부님입니다, 저희 신부님입니다.
카페에는 성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말에 흔한 일이나 어쩐지 이마저 기분이 좋았다.
- 눈이 쌓일까요?
- 두고 봐야지.
설탕 깐 종이가 테이블 위에 뒹굴고 있었다. 몇 개는 준호 손에서 찢겨나가고 또 접혀 본래 형태가 없었다. 김신부는 쓴 커피를 싫어했다. 카페 들어오자마자 창가에 앉으시더니 아무 거나 시키래서 저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한 입 대자마자 넌 뭐 이런 걸 마시냐고, 또 시럽은 싫다고 우겨서 각설탕을 반 주먹 받아다 들이부었더랬다. 준호는 마지막 종이를 끌어다 꼬물꼬물 손을 놀렸다. 각설탕 종이는 서른의 남자 손에 곰살맞게 작았다.
- 나오니까 좋다. 눈 오니까 좋고.
- 예.
정말 좋네요, 하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종이를 내려다본 채 미소를 짓자 볼이 살포시 부풀었다. 조금이나마 눈이 쌓였으면 싶었다. 손때 탄 종이학이 컵받침 위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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